쿠팡이 올해 창사 10주년을 맞습니다.
한국 유통은 쿠팡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쿠팡 매출은 2016년 1조9159억원, 2018년 4조4227억원, 2019년 7조1530억원으로 매년 두 자릿수 고속성장을 해왔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매출 규모를 키웠지만, 영업적자도 상당합니다.
쿠팡은 2016년 -5652억원, 2018년 -1조970억원, 2019년 -720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메기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정체된 생태계에서 메기 같은 강력한 포식자(경쟁자)가 나타나면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활력을 띄게 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쿠팡은 한국 유통산업의 메기입니다.
쿠팡이 없었다면 한국의 유통&물류산업은 지금과 같이 빠른 속도로 소비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쿠팡은 한국 유통산업의 체질 변화와 소비자 눈높이를 높혔습니다.
쿠팡은 자사 뉴스룸을 통해 로켓배송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소개합니다.
쿠팡 측은 자사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고객이 주문하기 전 주문량을 예측해 상품을 입고하고, 입고된 상품의 진열 위치와 상품을 반출할 이동동선을 짜고, 배송 상품이 적재될 위치까지 지정이 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동시에 쿠팡맨들이 운전하기 좋은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기 때문에 연간 수억개 이상의 주문과 익일, 새벽, 당일배송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요약하면 쿠팡은 물류혁신으로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고, 충성고객(유료회원)을 확보, 이를 통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점차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당연히 판매자 입장에선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더 많이 입점하게 되고, 이들 상품을 풀필먼트 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또 다시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쿠팡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킬 여지가 높아 보입니다.
쿠팡은 이미 가전제품 전문설치, 쿠팡 온리(Only) 상품, 마트 장보기, 공간별 집꾸미기, 싱글라이프, 결혼준비, 실버스토어 등 14개 전문 플랫폼을 통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롯데가 최근 통합플랫폼 '롯데온'을 내놨는데, 앱 내에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롭스, 롯데프레시, 롯데면세점, 롯데홈쇼핑, 롯데하이마트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철저하게 롯데 측 입장만 고려돼 개발이 됐다고 생각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통합검색을 통해 내가 원하는 상품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검색하길 바라지 않을까요?
어느 소비자가 롯데 계열사별 페이지를 이동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길 원할까요?
계열사별 비슷한 카테고리, 중복되는 상품도 있어 보이는데, 과연 이 앱이 이용자 친화적인지 의문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쿠팡은 현재 국내 이커머스 가운데 가장 소비자 관점에서 소비자를 위한 UI 구성과 편의성, 빠른 물류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쿠팡이 수년째 적자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쿠팡의 2018년 대비 2019년 매출과 자산은 각각 64%, 73% 증가했지만, 부채비율은 무려 9731% 늘었습니다.
쿠팡의 기업 안정성은 '미흡' 단계로, 이는 상거래를 위한 신용능력이 보통이며 경제여건 및 환경악화에 따라 거래안정성 저하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평가됩니다.
2018년에 비해 2019년 영업적자가 감소하기는 했지만, 연결 기준 누적적자 규모는 3조7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추가 투자 또는 나스닥 상장 등을 통한 자금 확보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쿠팡은 사업 초기 배송기사들이 고객들에게 손편지를 직접 작성해 전달하는 등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쿠팡에서 손편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기 힘듭니다.
배송물량 증가로 배달만 하기에도 업무량이 벅차기 때문입니다.
쿠팡 관계자는 저희와 통화에서 "사업 초기에는 배송물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손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배송물량 증가로 손편지를 쓰는 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과거 기자간담회를 통해 쿠팡 로켓배송은 '택배'가 아니라 '서비스'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중소 택배기업을 인수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실제로 택배기업 인수를 진행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문량 증가로 쿠팡맨의 배송량이 늘면서 로켓배송 또한 '서비스'라는 생각보다는 일반적인 '택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택배업계 관계자는 "요즘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자리가 없냐고 물어보는 쿠팡맨이 상당히 많다"며 "업무강도는 비슷한데, 수익 부문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쿠팡 배송기사는 쿠팡과 계약을 맺는 계약직 또는 정규직 형태의 노동자인 반면, CJ대한통운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쿠팡의 입사율과 퇴사율은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기업정보를 볼 수 있는 '크레딧잡'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올해 4월 기준 쿠팡 입사자는 1786명, 퇴사자는 576명입니다.
입사율은 85%, 퇴사율은 51%입니다.
쿠팡 노조에 따르면 1년 미만 쿠팡맨 퇴사율은 96%이며, 평균 퇴사율은 75%에 달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현직 쿠팡맨이 올린 글을 보면 쿠팡맨의 업무 환경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약직의 경우, 정규직 전환시 불이익이 두려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아침 7시까지 배송을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일반인이 일반인에게 배송하는 C2C 배송 '쿠팡 플렉스' 또한 논란의 소지가 많습니다.
자유롭게 원하는 시간대 일을 한다는 명문을 앞세우지만, 본사는 노동자에 대한 리스크를 회피하고, 배송 중 발생하는 많은 책임과 위험 부담을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몇 만원 벌겠다고 나섰다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출을 할 잠재 위험이 충분히 높아 보입니다.
분명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소비자 입장에서 쿠팡은 정말 좋은 서비스입니다.
소비자 친화적이며, 소비자 관점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혁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지금 쿠팡을 통해 누리는 그 편익과 혜택이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제공된다고 느낀다면 과연 쿠팡 서비스를 지속해서 이용하려 할까요?
기존 택배기업들이 하지 않았던 노동자 보호와 고용안정에 나섰다는 점이었는데, 지금 쿠팡이 가는 방향은 애초에 그들이 추구하던 방향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쿠팡을 이용하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쿠팡 내부에서 쿠팡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역시 쿠팡의 큰 고객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