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과 방패의 싸움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이란 수요, 공급, 경쟁사의 가격 등 시장의 상황에 따라 가격을 탄력적으로 변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격결정권, 이를 뒷받침하는 공급업체, 출혈을 감내할 모기업의 자금력을 가진 테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한데요.
지난 몇 주 동안 테무를 사용해 본 결과 마치 AI와 창과 방패의 싸움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테무는 사용 초반부터 ‘가입하면 99% 할인 제공’ 등과 같은 문구로 푸시 알림설정과 가입을 유도하는 혜택을 다수 제공했는데요. 이후 테무를 둘러보고, 원하는 제품을 찾아 정보를 확인할수록 이용자에 맞춘 초개인화 쇼핑앱이 되어 갔습니다.
어떻게든 제품을 구매하게 하려는 AI의 노력은 무섭기까지 했는데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시간이 지나면 계속해서 금액이 내려가거나, 할인쿠폰을 제공해 구매를 유도하는 거죠. ‘선택하신 상품이 거의 품절입니다’ 문구는 기본이며, ‘장바구니에 담으신 상품을 추첨해 가격을 낮췄습니다’ 혹은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상품 3개를 13000원에 맞춰 혜택을 준비했다’, ‘10분 내에 구매해야 90% 할인 제공’ 등 하루에도 수차례 구매유도 알람이나 메일을 수신했습니다.
재밌는 건, 결국 큰 폭으로 할인된 이 상품을 구매하려면 최소주문금액 13000원을 맞추려 다른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거죠. 일종의 미끼상품인 셈입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 본 적 없는 상품들이 다수 존재하고, 한국인의 후기가 많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퀄리티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됨에도 긍정적인 후기가 많다는 점도 놀라웠고요.
✔ 영향력은 미미하다?
앞서 언급했듯, 테무는 미국 쇼핑앱 시장의 최상위권에 위치할 만큼 미국 시장의 비중이 높습니다. 지난해 테무 매출액이 160억달러(약 22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중 약 60%가 미국에서 판매됐을 정도죠. 초당 약 3억원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의 슈퍼볼 광고를 집행할 정도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테무는 미국에서 유럽 등의 다른 국가들로 사업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2022년 말부터 틱톡과 미국 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미국 시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으며, 올해 3월 틱톡 강제매각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자 전환 속도를 높였다고 전했습니다. 올해 테무의 미국 매출 비중은 33%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요.
국내에서도 테무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때 폭발적으로 사용자가 증가해 주목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지난 4월부터는 활성이용자수가 지속해서 감소세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도가 하락한 점, 반복된 유해물질 검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테무를 통해 들어오는 제품들은 여전히 KC인증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른바 ‘싼 게 비지떡’ 취급을 받는 거죠.
또한 거래액 규모가 낮다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객단가가 낮기 때문인데요. 테무의 올해 1분기 결제 추정액은 911억원으로 쿠팡(12조7034억원), G마켓+옥션(3조 5548억원), 11번가(2조631억원) 등과는 차이가 큽니다. 테무의 1분기 월평균 이용자 수가 660만4169명으로 5위인 것을 고려하면 대조적인 결과죠.
반면, 알리익스프레스의 1분기 결제 추정액은 819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4% 성장했습니다. 중국산 초저가 공산품을 제공한다는 부분에서는 테무와 비슷하지만 국내 셀러들이 대거 입점한 ‘케이베뉴(K-Venue)’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케이베뉴 수수료 면제 정책을 6월까지 연장한 부분이나, 천억 페스타 등 여러 행사를 통해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직접적인 매출 상승의 효과와 더불어 농심, LG생활건강 등의 메이저 업체들이 입점해 알리익스프레스라는 플랫폼 자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예상됩니다.
✔ 잠재력의 크기는
알리익스프레스의 국내 매출은 올해 4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테무는 아직 케이베뉴처럼 객단가를 올리기 위한 전략을 펼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마케팅 비용도 워낙 커서 적자인 상황으로 JP모건체이스는 2027년, HSBC는 2025년을 테무 흑자 전환의 원년이라고 전망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테무의 지금 행보가 ‘계획된 적자’라는 것은 확실한 듯 보입니다.
핀둬둬도 2015년 설립 후, 2020년 3분기에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지금은 연간 순이익 11조원에 달하는 기업이 됐고요. 오히려 모기업의 든든한 자금력이 갖춰진 테무가 상황은 더 좋죠. 외신에 따르면 핀둬둬의 매출 중 테무의 공헌율은 지난해 23%였으며, 2025년에는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핀둬둬도 아직 성장 중인 기업이지만, 테무가 핀둬둬의 신사업, 즉 성장 모멘텀이라고 본다면 아직 새로운 전략은 시작도 안 한 셈입니다.
저품질, 낮은 객단가는 분명 테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지만 전에 없던 플랫폼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만큼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평가하기보다는 미래까지 함께 예측하며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지난 5월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몇 년간 수십억 달러의 자본 투자를 지속해 풀필먼트 및 물류 인프라를 강화할 계획이다”라며 추가적인 투자를 예고한 것도 C커머스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으로 풀이됩니다.
쿠팡이 로켓배송을 론칭할 당시, 누군가는 언제 망할지 예측하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테무의 잠재력을 누구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정교한 기술에 기반한 '고객 맞춤형 쇼핑 경험'을 누가 제공했었나요? 주관적 견해일 수 있으나, 이렇게 정교하게 소비자의 심리를 움직이며, 소비를 자극하는 앱은 최초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더욱 잠재력이 무섭습니다. 창과 방패의 그 결말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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