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컨테이너터미널은 부산신항, 북항, 인천항, 광양항, 평택항, 포항 영일만항 등 많습니다. 동해에 선사가 취항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물론 왕복 물동량이 높은 편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신항의 서쪽 컨테이너부두가 10월에 개장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총괄하는 공기업이 부산항만공사(BPA)이고, 운영하는 회사는 민간기업으로 동원글로벌터미널주식회사입니다. 동원그룹이 물류에 진출하고 컨테이너터미널까지 확장하고 있죠.
그런데 이 개장이 문제가 있다고 데일리로그가 보도한 바 있습니다. 6월 20일자 기사에서 ‘부산신항 서‘컨’부두 10월 개장 고집하는 BPA, 왜?‘라는 제목으로 말이죠. 지금 개장하는 곳은 서 컨테이너터미널 2-5단계인데, 여기가 왜 중요하냐면 국내 최초 완전 자동화 컨테이너터미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무인 자동화 터미널의 핵심장비 중 하나는 바로 AGV(Automated Guided Vehicle, 무인운반장비)인데요.
이 핵심장비의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는 거고, 부산항만공사가 예정대로 개장을 강행하겠다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되는 완전 자동화 항만이니 만큼 장비의 안정성이나 적합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보고 있고요.
칭다오, 로테르담, 롱비치, 싱가포르항 등 무인 컨테이너터미널로 유명한 항들도 개장하기 전 준비기간이 있고, 테스트 기간이 있습니다. 컨테이너크레인, AGV 등의 장비들이 필요한데 이런 것들에 대한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거죠. 사람이 없는 무인장비이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바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최소 안전점검 기간 6개월이 필요하다는 거고요.
✔ 강행하는 이유는?
부산항만공사는 왜 10월 개장을 강행하려고 하는 걸까요. 공사 입장에서는 계획에 차질을 빚기 싫다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또 야드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점도 있죠. 컨테이너터미널은 국가가 건설했기 때문에 해양수산부의 소유입니다. 항만공사가 이걸 임대하고, 동원글로벌터미널주식회사에 주는 겁니다.
이걸 전대라고 하고요. 국가-부산항만공사 간 임대차계약, 부산항만공사-사기업 간의 전대차 계약의 형태죠. 그리고 비용을 받습니다. 저도 예전에 광양항에서 비용을 지출했던 기억이 있는데, 항만공사의 입장에서는 국가에 비용을 지불하고, 부수적인 비용을 내면 남는 비용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동원글로벌터미널주식회사에게 임대료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개장 기간을 늦추게 되면 이 비용을 받기가 힘들죠.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 임대료가 얼마나 비싸냐면, 언론에 나온 내용인데 시설 임대료는 연간 378억원, 장비 임대료는 연간 206억원입니다. 이 두 항목을 합치면 약 585억원이죠. 이 돈을 부산항만공사가 받아야 하는데 6개월 동안 안전점검 기간을 거치게 되면 약 290억원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부산항의 경쟁력은 많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미칩니다)
✔ 더 중요한 것은
부산항만공사가 임대료 수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컨테이너터미널의 운영사인 동원글로벌터미널주식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해서 본선을 잘 처리하고, 세계적인 부산의 자동화 컨테이너터미널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 해운항만물류의 발전이 290억원의 임대료 손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부산항만공사는 예정대로 진행을 하겠다는 입장이고요. 현재 AGV는 총 60대가 들어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장비의 제조사는 네덜란드의 회사인데, 최근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회사가 중국에는 판매를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죠.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도 최근 네덜란드를 방문했는데, 반도체 장비의 핵심기술을 네덜란드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회사가 17대를 제작하고, 나머지는 우리나라의 현대로템에서 기술을 이전 받아서 제작합니다. 이 부분이 늦어지고 있는 거고요. 그렇다면 먼저 드는 생각은 네덜란드 회사가 17대를 납품해야 하는데 적기에 납품이 되는 건지, 안 된다면 귀책사유는 누구에게 있는지 제대로 다뤄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결론적으로는 AGV가 늦게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데, 핵심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개장하기 때문에 무인 자동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해외의 사례만 보더라도 세계 최고의 무인 컨테이너터미널로 불리는 중국 칭다오, 양산항도 AGV를 핵심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 비슷했던 경험
10여 년 전에 제가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동해안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하는 광물인 석회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석회석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나라 중 하나거든요. 대표적으로 포스코가 철강을 만들려면 용광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추가적으로 석회석이 필요합니다.
컨소시움 TF(태스크포스)에 참여했을 때, 동해에서 연간 700만톤의 석회석을 캐고, 연안 화물선으로 포스코에 납품하는 형태였습니다. 그걸 위해서 대한통운(50%), 세방(45%), 쌍용(5%)의 지분으로 회사를 만들었죠.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부두공사가 안됐는데 장비가 먼저 들어왔어요.
석회석을 배에 실으려면 크레인이 있어야 했고, 미국에서 장비가 도착했으니 개장을 해야 하는데 부두가 완공이 안 된 겁니다. 부두가 완공이 되고 장비가 들어와서 개장을 하는 거잖아요. 결국 장비가 1년 넘게 방치가 됐고, 녹이 슬었어요. 그래서 제가 당시 누가 수입을 했는지 따져봤더니 A사였습니다. 그런데 수출자가 A사의 해외 상사 기업이었거든요. 미국의 장비 제조사가 수출자가 아니었던 거죠.
공사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공사가 늦어진 만큼 장비도 선적을 지연시켜야죠. 그걸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조항이라고 하고, 계약에서 가능한 내용입니다. 결국 그때 발생했던 문제가 장비 A/S를 받고, 조립을 하려고 했더니 미국 회사에서 비용을 요구한 부분입니다. 1년 이상 지났으니 조립, A/S 비용을 내라는 거죠. A/S 비용은 보통 10% 내외로, 수십억원 상당의 안 내도 되는 돈을 내라고 한 겁니다.
자동화 터미널에 AGV가 안 들어왔는데 터미널은 준비가 된, 지금의 상황과는 반대입니다. 경험으로 빗대어 볼 때 이런 부분들이 어처구니없게 발생하는 이유는 계약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손해배상이나 지연 사태 등에 대한 조항을 면밀히 따져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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