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경기침체, 짠테크 등의 키워드가 주목받은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유통업계에서는 전반적인 소비 침체에 대비해 '최저가' 정책을 내세우거나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최근 소비자들은 리퍼 제품들을 구매하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리퍼 제품이란 매장에 전시했던 제품, 소비기한이 임박한 상품, 고객이 단순 변심해 판매한 상품 등을 일컫는 말인데요. 성능에는 이상이 없으나 외관적으로 미세한 잔기스 등으로 인해 판매가 어려워져 재고가 된 상품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제품을 재정비해서 정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겁니다. 할인율이 50%가 넘는 경우도 많죠.
이에 따라 이커머스기업들은 최근 리퍼 전문관을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티몬은 '리퍼임박마켓'을 한시적으로 선보였었는데, 반응이 좋자 리뉴얼 과정을 거쳐 올해 4월부터는 상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318% 증가했다고도 하죠.
11번가도 지난 4월 리퍼 전문관 '리퍼블리'를 개설했습니다. 11번가의 경우에는 리퍼 전문몰들과 협력해 검수와 AS까지 강화한 것이 특징인데요. 170곳의 검증된 판매자들을 입점시켜 전문성을 강화해 소비자와의 신뢰도를 높이는 모습입니다. 연말까지 판매자를 2배 이상 늘리고, 약 1500종 이상의 리퍼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죠.
쿠팡의 경우에는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 '로켓프레시'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마감세일특가'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또한 '창고특가'에서는 이월재고나 유통기한 임박 상품, 리퍼브 할인 상품을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와우회원에 한해 새 상품과 동일하게 무료배송, 반품, 로켓설치까지 이용이 가능해 한 단계 더 고도화된 서비스로 보이는데요.
이 외에도 쿠팡의 경우에는 제품을 구매할 때 별도로 단순 변심 등의 이유로 반품된 상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훼손 상태에 따라서 할인율을 책정하고 이 경우에도 와우회원과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며, 철저하게 검수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리퍼 전문입니다
종합몰에서 리퍼 전문관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리퍼 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해오던 전문몰이나 매장도 존재하는데요. 이들은 특히나 재고의 선순환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019년 설립된 '리씽크(Re:think)'는 재고매입 플랫폼입니다. 주력 상품군은 전자기기로 약 65%를 차지합니다. 큰 특징으로는 구매 후에도 리케어 서비스를 통해 1년 동안 무상 AS를 제공하며, 네이버쇼핑과 연동해 얼마나 저렴한지 가격을 비교해 제공합니다. 5월 19일 홈페이지 상단에 있는 'LG전자 노트북 그램14 화이트에디션'의 경우 최저 시세가 약 160만원이었으나, 리씽크에서는 약 60만원에 판매 중이었습니다.
또한 B2B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이 눈에 띄는데요. 리씽크 공식몰을 방문하면 '재고 컨설팅을 무료로 해드립니다'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60만의 리씽크 회원, 2000만의 중고나라 회원을 통해 재고를 빠르게 문제없이 해결 가능하다고 소개하죠. 수도권에 한해 일부 상품에 대해서는 당일배송 서비스도 제공 중이었습니다. 2021년 기준 매출액은 약 600억원에 달합니다.
'떠리몰(Thirtymall)'은 2013년 론칭된 온라인 재고할인 플랫폼입니다. 지난 3월 기준 회원 수는 120만명, 앱 다운로드 수는 150만건에 달하며, 주력 상품군은 식품입니다. 유통기한(판매할 수 있는 최종 시한)과 소비기한(섭취해도 이상이 없다고 인정되는 소비 최종 시한)의 차이를 이용하여 유통기한에 임박한 상품을 최대 90% 할인해서 판매한 게 시작이죠. 현재는 패션, 가전 등 다양한 품목 군으로 확대됐으며 떠리몰을 운영하는 핌아시아는 지난해 36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2018년 선보인 마감 할인 중개 플랫폼 '라스트오더(lastorder)'도 주목할만한데요. 근처에 있는 음식점 또는 편의점에서 당일 소진하지 못한 식품 재고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합니다. 판매자에게는 폐기될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거죠. 지난해 기준 약 18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는 식 뿐 아니라 의류, 생활용품 등 카테고리가 확장된 상태입니다. 리퍼관을 이용해서 가전제품 또한 판매하고 있고요. 누적 투자액은 약 90억원에 달합니다.
그 외에도 리마켓, 리퍼브샵, 리퍼브모아, 땡큐마켓, 뉴퍼마켓 등 리퍼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거나, 중고품을 판매하는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여러 개 운영하는 곳도 있었고요. 생각해 보면 대형마트 마감 때 세일을 하거나, 중고, 재고 가전을 판매하는 종합마트도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죠. 바디프랜드나 하이마트 등에서는 자체적으로 리퍼 제품을 판매하면서 검수나 AS에서 유독 강점을 보이고 있고요.
✔ 지속가능한 소비
NHN 데이터의 '2023 상반기 앱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절약형 앱 설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2800만 안드로이드 유저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하반기(10월) 대비 올해 상반기(4월) 설치 증가율이 높았던 쇼핑앱 중 하나가 떠리몰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직구앱이나 저가 브랜드 카페 앱 설치 증가율도 높았고요. 그만큼 경기불황, 소비둔화가 지속됨에 따라 알뜰소비 트렌드가 아직까지도 유지되는 모습입니다.
종합몰의 리퍼 전문관, 리퍼 전문몰 등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재고관리에 있습니다. 유통기업들은 매번 재고자산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산업적으로 본다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약 54조원에 달하기도 했죠. 결국 리퍼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폐기·보관 등의 비효율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소비자는 같은 상품을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게 해줍니다. 자원의 선순환을 이끄는 구조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리퍼 시장이 성장하면서 물론 잡음도 존재합니다. 최근 백화점에서 리퍼 제품을 새 상품인 것처럼 판매해 피해를 본 소비자 사례도 확인되고 있거든요. 때문에 재고, 리퍼 시장의 구조에 있어서 보다 전문적인 유통시스템이 동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기업들도 대부분 AS 등의 사후관리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 리퍼 시장은 더 이상 B급 제품을 단순히 저렴하게 판매하는 개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속가능한 소비를 선도하는 판매자, 소비자가 윈윈하는 전략의 큰 축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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