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일반, 특별, 코어로 지역이 나눠진 계급사회가 존재하는데, 난민은 거주 지역도 없고 산소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죠. 때문에 난민들 중 일부는 산소와 생필품 등을 약탈하는 '헌터'가 됩니다. 그리고 택배기사는 이들로부터 택배(산소, 생필품 등)를 지키고 정시에, 정확하게 배송하는 강한 존재입니다.
이 외에도 계급사회에 따른 권력과 이를 악용하는 악역들, 주인공 집단의 투쟁이 주된 내용인데요. 그러나 인물들 간의 서사, 연결고리, 개연성 부족 등을 이유로 몰입감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으나 아쉽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요.
그럼에도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제목부터 '택배기사'이며, 인류의 희망과 같은 존재로 묘사됐다는 점입니다. 택배기사를 연출한 조의석 감독은 "설정이 굉장히 독특했다. 흔히 아는 택배기사가 아닌 헌터의 공격을 뚫고 산소와 생필품을 나르는, 살아남은 인류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설정이 매력적이었다"라며 연출을 결심했다고 하죠.
✔ 물류의 이미지
택배, 그리고 물류에 대한 이미지는 보통 어떤가요? 택배나 물류를 소재로 했거나, 사회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들은 열악한 환경이나 가난, 슬픔, 직업적 비하 등으로 귀결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지난 2013년 KBS 2TV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 극중 인물들은 택배기사를 고민 중인 조성하 배우에 대해 "세상에 택배가 웬 말이냐. 누가 알까 겁난다", "다 말아먹고 지금은 택배 한다" 등 택배업에 대한 직업적 비하를 일삼죠.
또한 2015년 개봉한 천만 영화 '베테랑'에서는 화물차 기사의 임금 체납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화물차 기사가 체납된 임금을 받으려고 찾아갔다가 일방적 폭행을 당하고, 자살로 위장시키기 위해 비상계단에서 떨어뜨리기도 하죠. 이 과정에서 유명대사 "어이가 없네"가 나온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난해 한진은 물류업계 최초로 택배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 '백일몽'을 공개했죠. 최근 집중하고 있는 '로지테인먼트(Logistics+Entertainment)'의 일환으로 게임, 웹툰 등에 이어 제작한 영화로 콘텐츠를 통해 물류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영화 '백일몽'은 젊은 택배기사 '기철'과 그의 노모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치매 증상이 있어 밤마다 소리를 지르는 노모로 인해 택배 트럭에서 생활하며, 택배로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는 내용으로 다소 암울한 전개입니다. 당시 시사회에서 조현민 사장은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한진의 대표 사업인 택배를 재해석하고 물류 회사를 넘어 우리 삶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로 해석하고 싶었다"라고 밝혔죠.
이전에는 없었던 시도로 신선하면서도, 물류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긍정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면도 있었고요. 그러나 지난 몇 년 간의 영화나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게 택배기사를 '약자'로 비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공존했습니다.
✔ 필요한 존재잖아요
그래서 비록 혹평을 받고 있지만 넷플릭스의 '택배기사'가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입니다. 시대적 배경이나 설정은 물론 큰 차이가 있지만 고객에게 정시에, 정확하게 배송해 준다는 근본적인 역할은 지금의 택배기사와 비슷한 것 같거든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거리를 두고 집 안에서 우리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때 집 앞까지 생필품이나 음식을 배달해 준 것은 택배기사와 배달라이더인 것도 사실이고요.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국내 택배 물동량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약 10% 증가했는데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은 전년 대비 20%, 2021년에도 7.59% 상승했습니다. 2021년 기준 택배 물동량은 36억3천만개에 달합니다. 쿠팡(7조3990억원)은 올 1분기 이마트(7조1354억원)의 매출을 넘기기도 했을 만큼 온라인의 비중이 높아졌고, 그만큼 택배가 우리의 삶에 깊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택배기사의 근로환경이나 처우개선에 대한 성장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물론 최근 사회적합의도 있고, 코로나 시기 오히려 물동량이 폭증하면서 임금이 높아지기도 했죠.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물류산업 종사자의 근로환경은 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지입사기나 화물차 기사들의 운임에 대한 문제도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쿠팡이나 CJ대한통운의 행보가 눈에 띄는 것은 사실입니다. 쿠팡은 애초부터 유니폼을 입고, 택배차량을 깔끔하게 도색하는 등 쿠팡맨(현 쿠팡친구)의 이미지를 앞세웠습니다. 또한 CJ대한통운의 유튜브 채널 '택배와따'에서 고소득 택배기사 등을 주제로 콘텐츠를 꾸려가는 것도 인상 깊고요. 우리가 길거리에서 잘 볼 수는 없지만 해외물류기업인 UPS나 DHL 같은 경우는 택배기사들이 깔끔한 유니폼과 도색된 차량으로 배송을 다니고는 하죠. 인식 자체가 일용직 택배기사가 아닌 직원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만큼 서비스에 대한 인식도 좋고요.
물류산업이 정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해외 물품도 이제 더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는 초국경 택배가 등장하기도 했죠. 그래서 더더욱 인식 개선은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있고, 인력 수급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죠. 비단 택배를 중심으로 얘기했지만, 항만하역, 물류센터, 장거리 화물차 운송, 배달라이더 등 물류산업 곳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종사자들이 존재합니다.
좋은 인식을 가지게 되면 직업적인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고, 결국 인력의 수급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겠죠. 앞서 언급한 기업들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아가 정부에서도 활발한 활동과 정책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넷플릭스의 '택배기사'처럼 인류의 유일한 희망까진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그들의 직업이 폄훼되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