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스트리밍
구독경제는 이미 우리의 삶에 많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일정한 기간 동안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거죠. 넷플릭스처럼요. 그게 의류에 적용되어 생긴 용어가 '패션 스트리밍'입니다. 옷을 구매하지 않고, 일정 기간 대여해서 입는 거죠.
국내에서는 SK플래닛이 2016년 9월 '처음 만나는 패션 스트리밍' 프로젝트 '프로젝트앤(Project Anne)'을 론칭했습니다.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1~2벌의 의류들을 월 4회, 또는 기본 1개의 가방을 월 3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였죠. 또한 그 옷이 마음에 든다면 소유할 수도 있는 개념으로, 단순 일회성 의류 렌털과는 차별점이 있었습니다.
론칭 이후 6개월 만에 가입자는 1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는데요. 2017년 상반기 고객 분석에 의하면 유료 이용권의 50%가 정기 결제였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한 고객 만족도도 높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18년 5월 해당 서비스는 회사 내부 사정으로 종료됐고, SK플래닛 관계자는 "생각했던 것만큼 이 사업의 수익 구조가 마련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2009년 시작한 '렌트더런웨이(Rent the Runway)는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월 159달러(약 20만원)를 내면 무한정으로 대여가 가능하고 옷이 마음에 들면 저렴한 가격에 구매도 가능하죠.
이와 같은 사업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물류센터입니다. 미국 전역에 물류센터를 배치하고 자체적인 스마트 운송 시스템을 이용하죠. 또한 세탁이 중요한 만큼 2020년 당시 직원 1200명 중 세탁 직원만 500명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의류 보험도 가입해서 소비자 클레임도 최소화했고요.
그러나 렌트더런웨이는 2021년 10월 상장한 이후로 주가는 크게 하락했습니다. 클리닝과 물류를 직접 담당하는 만큼 고정비가 높은 편이고, 단순하게 배송을 해주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 서비스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기 때문이죠. 비슷한 사업모델이었던 '르 토트(Le Tote)'는 미국의 오래된 럭셔리 백화점 '로드앤테일러(Lord&Taylor)'를 인수하면서 더욱 주목받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 패브
국내에도 지금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몇 개의 기업들이 있는데요. '패브(faav)'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패션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 및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인플루언서(Influence+er)' 협찬을 활용한다는 점이죠.
그대로 해석하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신조어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연예인과도 비슷한 개념이죠.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입은 옷이 마음에 든다면, 구매로 이어지는 광고의 개념이 있었듯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의 SNS까지도 그 영역이 훨씬 확대되고 진입장벽은 낮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유통과정을 설명하면 브랜드에서 패브에 상품을 보내주면 패브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상품을 대여해 주고, 인플루언서는 콘텐츠를 제작한 후 패브가 다시 수거해갑니다. 그 제품들을 소비자에게 다시 대여해 주거나 세컨핸드(한 번 사용한 것) 제품으로 판매하거나, 멤버십(구독) 형태로 소비자에게 제공합니다. 그 수익은 브랜드랑 다시 나누는데 시기마다 상이할 수 있지만 수수료는 약 27% 정도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인플루언서 마케팅, 수익 등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별도의 인플루언서 섭외 과정 없이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고, 이를 자사 채널에 홍보 수단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단순히 신상품뿐 아니라 이월 및 반품 재고, 샘플 등의 상품을 패브를 통해 판매해 재고에 대한 문제를 해결 가능하죠.
단순 인플루언서 마케팅 업체와 다른 점은 패션 전문 물류센터를 구축했다는 점이에요. 단순 관리자 역할이 아닌 제품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퀄리티를 보장한다고 소개하죠. 패브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물류과정 당 비용이 명시되어 있고, 총 콘텐츠 비용은 개당 17000원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제품에 대한 공급원가를 현저히 낮출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품을 제공할 수 있고, 기존의 패션 스트리밍 서비스와 비슷하게 멤버십 형태에서도 보다 저렴하게 구독이 가능하죠. 또 옷이 마음에 들면 구매도 가능하고요.
'패브 스타일' 카테고리에서는 패션 커뮤니티 기능도 하고 있는데요. 인스타그램이나 무신사 스냅처럼 자신의 스타일링을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사이즈나 후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죠. 피드를 한 번 업로드할 때마다 1000원 정도의 적립금이 주어지고 있는데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이 스타일 카테고리에 5번 이상 노출되면 '블루 배지'가 주어집니다.
패브에 참여해 본 인플루언서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블루 배지를 받게 되면 '스튜디오'라는 서비스를 이용이 가능한데, 무료로 배송 및 반품이 가능하며 브랜드마다 상이하지만 7~10일 정도의 기간 동안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물론 그 대가로 피드를 업로드해야 합니다
✔ 재고와 중고
패브는 단순히 옷을 빌려주고 수익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매년 생산하는 의류 중 약 30%가 버려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집중해 재고를 순환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죠.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폐의류 발생량은 약 8만t으로 하루 평균 225t의 의류 폐기물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약 9200만 톤의 폐기물이 발생하는데, 2030년에는 약 1억3천만톤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최근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의 유행으로 과잉생산 및 소비가 더 촉진되고 있다고 하죠.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류 재고나 리사이클을 활용하기 위해서 최근 중고시장은 커지고 있습니다. 백화점에 오프라인 중고매장이 들어서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의 연간 중고거래 시장은 약 25조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죠.
때문에 패브와 같은 모델은 다른 의미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기존의 번개장터나 당근마켓에서 중고를 C2C로 거래하는 부분도 물론 중요하지만, 중고 전문 플랫폼의 물류 역량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현재 일부 의류 브랜드들은 시즌 별로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인플루언서들에게 대대적으로 협찬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팔로워 수나 콘텐츠 퀄리티에 따라서 원고료를 지급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해당 제품들을 인플루언서들이 반드시 착용하지는 않습니다. 콘텐츠 생산 후 번개장터나 당근마켓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꽤 많거든요. B급 제품이나 리퍼브 제품 판매와 비슷한 거죠.
이 과정에서도 커머스나 물류의 과정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패브처럼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대행해 주면서도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해서 제품을 순환시키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지역 별로 소규모 물류센터를 만들어서 입었던 제품들을 회수하고, 플랫폼에서 매입을 하는 방식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물류센터에는 클리닝, 세탁 등의 의류 전문 기능을 도입하고, 그렇게 검증된 물류과정을 거친다면 소비자들은 중고라고 해도 더욱 믿음직하게 구매할 수 있을 거고요. 과거 콘텐츠로 다뤘었던 물류기업 '올리브'처럼 배송 과정도 택배가 아니라 재활용 가능한 토트백을 활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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